브랜드와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용어였다. 마케팅, 브랜딩, 브랜드 관리, 포지셔닝. 책마다 쓰는 말이 달랐고, 같은 걸 다르게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보통은 마케팅을 광고·프로모션·전환율, 브랜딩을 로고와 톤앤매너로 나눈다. 그 구분이 정말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책을 시간순으로 읽기로 했다. 세스 고딘(Seth Godin)이다. Permission Marketing(1999), Purple Cow(2003), Tribes(2008), This Is Marketing(2018). 20년에 걸친 네 권을 이어 읽으면 생각이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 보일 것 같았다.
결과는 의외로 단순했다. 책마다 단어는 달랐는데 결론은 한 곳으로 모였다. 마케팅은 결국 브랜드를 관리하는 일이다.
브랜드 마케팅을 공부하며 남기는 기록 시리즈, "브랜드 언박싱"의 두 번째 글이다.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이라 해석이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고딘이 말하는 브랜드
고딘에게 브랜드는 로고나 슬로건이 아니다. 소비자 머릿속에 쌓인 기대·기억·이야기·관계의 총합이다. 조건이 같은 상품 두 개 중 하나를 고르게 만드는 힘이 브랜드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마케팅은 광고 한 번, 이벤트 한 번이 아니라 그것을 시간을 두고 쌓는 일이 된다. 네 권이 이 결론에 어떻게 도착하는지 하나씩 본다.
신뢰는 빌리는 게 아니라 허락받고 쌓는 것

고딘은 기존 광고를 "낯선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거는 것(interruption marketing)"이라고 불렀다. TV 광고, 스팸 메일, 전단지가 전부 여기에 속한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먼저 허락(permission)을 받고, 그 허락을 배신하지 않는 메시지만 보내는 것이다.
와우 포인트: 허락은 한 번 받고 끝나는 게 아니다.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다시 검증받는다. "이번 캠페인을 어떻게 터뜨릴까"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계속 들어줄 이유가 남아 있나"를 묻는 순간, 이미 브랜드 관리다.
평범함이 가장 위험한 전략

초원에 소가 100마리면 처음엔 신기해도 금방 지루해진다. 그중 한 마리가 보라색이라면 다르다. 고딘이 말하는 보라색 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수준의 remarkable함이다.
와우 포인트: "In a crowded marketplace, fitting in is failing." 무난하면 안전하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그리고 remarkable함은 제품 스펙이 아니라 "이 브랜드는 뭐가 다른가"의 문제다.
마케터의 일은 무리를 이끄는 것

인터넷 덕분에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연결된다. 고딘은 이 무리를 부족(tribe)이라 부르고, 마케팅을 부족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다시 정의한다. 좋은 브랜드가 만드는 건 고객이 아니라 지지자다.
와우 포인트: 입장을 계속 바꾸는 리더를 따르는 사람은 없다. 캠페인마다 톤이 바뀌는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일관됨이 브랜드 관리의 가장 기본 도구라는 얘기다.
모두가 아니라 가장 좁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고딘은 마케팅을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관대한 행위"라고 정의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마케팅은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조직이 유지될 만큼만 작고, 그 대신 확실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좁은 사람들을 먼저 정하라고 한다.
와우 포인트: 구매를 결정하는 건 스펙 비교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들이 고르는 선택인가"다. 누구를 위한 브랜드이고 무엇을 약속하는지 계속 다듬는 일, 이쯤 되면 마케팅과 브랜드 관리는 같은 말이다.
주거 브랜드에 적용하면
분양 광고는 평형, 커뮤니티, 입지를 나열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건이 같다면 사람들은 신뢰가 더 쌓인 시공사 브랜드를 고른다. 브동산의 적정가 모형에서 브랜드 항목에 100점 중 20점을 따로 배정한 이유도 같다. 스펙이 같아도 그 브랜드가 지난 단지에서 무엇을 약속하고 지켰는지에 대한 기억이 가격에 반영된다.
고딘의 언어로 옮기면, 관리해야 할 대상은 이번 분양 광고가 아니라 그 브랜드가 지난 단지들에서 쌓아온 기대·기억·이야기다. 최소유효시장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모두에게 "좋은 아파트"라고 말하기보다, 이 단지가 어떤 삶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곳인지 먼저 정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정리 — 네 권을 이어 읽고 남은 것
신뢰는 쌓는 것(Permission Marketing), 무난함이 가장 위험하다(Purple Cow), 일관되게 이끌어라(Tribes), 가장 좁은 사람들에게 확실히(This Is Marketing). 네 권 모두 광고 집행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 머릿속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말한다. 그게 브랜드고, 의도적으로 쌓는 일이 마케팅이다.
공부하면서 느낀 점
첫째, 순서가 바뀌었다. 보통은 상품을 만들고 광고비를 쓰고 반응을 본다. 고딘의 책에서는 허락과 신뢰가 먼저고 광고는 그다음이다. 광고를 잘 만드는 것보다 광고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줄 이유를 남기는 쪽이 더 큰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둘째, "무난함이 가장 안전하다"는 직관을 의심하게 됐다. 조직에서는 무난한 안이 이기기 쉽다. 욕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택지가 넘치는 시장에서는 욕을 안 먹는 것과 기억에 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고딘은 "fitting in is failing"이라고 못 박는다. 불편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셋째, 일관성은 지루한 일이 아니라 자산을 쌓는 일이다. 캠페인이 바뀔 때마다 톤이 흔들리면 지난 캠페인에서 쌓은 기억이 이월되지 않는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려야 부족이 생긴다.
넷째, 좁게 가라는 말은 처음엔 직관에 반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좋은 브랜드"를 그려보면 오히려 아무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지 정하는 일은 누구를 포기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실무에서 참고할 점
- 기획서에 "캠페인이 끝난 뒤 남는 자산" 한 줄을 추가한다. 신뢰, 지지자, 기억 중 무엇이 남는지 적지 못하면 소모성 집행일 가능성이 높다.
- 시안을 낼 때 무난한 안과 낯선 안을 같이 올린다. 낯선 안이 왜 위험한지가 아니라 무난한 안이 왜 기억에 남을지를 먼저 묻게 된다.
- 톤앤매너를 한 장으로 정리해 지난 캠페인과 나란히 놓고 검토한다.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이어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타깃을 인구통계가 아니라 세계관 한 문장으로 쓴다. "30대 직장인"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 식이다. 이 문장이 안 나오면 타깃이 아직 넓다.
- 성과 지표에 단기 전환율 외에 관계 지표를 하나 둔다. 재방문, 추천, 문의 같은 지표다. 브랜드는 한 번의 전환이 아니라 반복에서 쌓이기 때문이다.
기획할 때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
- 캠페인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계속 들어줄 이유가 남는가.
- 경쟁사와 나란히 놓았을 때 굳이 이야기하고 싶어질 만큼 다른 점이 있는가.
- 이번 메시지의 톤이 지난 캠페인과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이어지는가.
-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에게도 확실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 끝난 뒤 기억에 남는 것이 제품 스펙인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인가.
앞으로 청약·분양 콘텐츠와 광고주 제안을 만들 때도 이 질문을 기준으로 쓴다.
자료: 세스 고딘 블로그(Seth's Blog) ↗ · Permission Marketing ↗ · Purple Cow ↗ · Tribes ↗ · This Is Marketing ↗
브랜드 공부 기록은 계속 이어진다. 다음 글에서 또 다른 주제를 다룬다.